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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B6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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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카지마 B6N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 해군이 운용한 함상 공격기이다. 1939년 일본 해군의 요구에 따라 나카지마 비행기에서 개발되었으며, 1943년 8월부터 실전 배치되었다. B6N은 97식 함상 공격기의 후계기로, 3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어뢰 또는 폭탄을 탑재할 수 있었다. '마모루' 엔진의 문제로 인해 '카세이' 엔진을 장착한 B6N2가 주력 생산 모델이 되었으며, 총 1,268대가 생산되었다. B6N은 필리핀 해 해전, 마리아나 해전 등 태평양 전쟁의 주요 해전에서 운용되었으나, 미군의 강력한 제공권 장악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종전 당시에는 187기가 남아있었으며, 현재 미국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에 B6N2 기체가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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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B6N
기본 정보
B6N2 비행 중
B6N2 비행 중
유형뇌격기
국적일본
제작사나카지마 비행기
디자이너마쓰무라 겐이치
최초 비행1941년 3월 14일
소개1943년 8월
퇴역1945년
주요 운용국대일본제국 해군
생산 대수1,268대
명칭
로마자 표기Tenzan
의미천산 (천상의 산)
연합군 코드명Jill (질)

2. 개발 배경

엔진 시동 전의 B6N2


중일 전쟁 초기, 97식 함상 공격기(B5N)의 약점이 드러나면서 일본 제국 해군은 더 빠르고 항속거리가 긴 뇌격기를 필요로 했다. 이에 1939년 12월, 일본 해군은 나카지마에 B5N과 동일한 외부 무장 탑재가 가능한 해군 실험 ''14-시'' 함상 공격기 개발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항공모함의 표준 크기 항공기 엘리베이터의 제한으로 설계자 마쓰무라는 B5N과 유사한 날개 길이와 면적을 사용하고, 항공기 전체 길이를 11m로 제한해야 했다. B6N1 시제기는 1941년 3월 14일에 첫 비행을 했으나, 지속적인 테스트 결과 특정 속도에서 심한 진동과 과열이 발생하는 등 ''마모루'' 11 엔진의 신뢰성 문제가 드러났다.

1942년 말, 일련의 개조 후 엔진 성능이 유망한 것으로 간주되어 항공모함 수락 시험이 시작되었고, 1943년 초 B6N1은 해군 함상 공격기 ''텐잔'' 11형으로 공식 생산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1943년 7월, 일본 군수성은 나카지마에게 ''마모루 11'' 엔진 생산 중단을 명령했다.

이에 나카지마는 해군이 원래 요청했던 미쓰비시 MK4T ''카세이 25'' 엔진으로 대체했고, 개조된 항공기는 해군 함상 공격기 ''텐잔'' 12형, 즉 B6N2로 지정되었다.[8]

1939년(쇼와 14년) 10월, 해군은 97식 3호 함상 공격기의 후계 함상 공격기로서 "14 시 함상 공격기" 계획 요구서를 나카지마 비행기에 제시했다. 나카지마 비행기는 마쓰무라 겐이치 기술사를 설계 주무자로 하는 설계진을 구성, 사내 명칭 '''BK'''로 1940년(쇼와 15년) 5월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했다.

2. 1. 요구사항

1939년 12월, 일본 해군은 나카지마 비행기에 새로운 함상 공격기 개발을 요구했다.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았다.[1]

항목내용
승무원3명 (조종사, 항법사/폭격수, 무선 조작수/사수)
구조저익, 캔틸레버, 전체 금속 구조 (조종면은 피복 처리)
최고 속도250kn 이상
순항 속도200kn
항속 거리800kg 폭탄 탑재 시 1000nmi
항속 거리외부 무장 없이 2072nmi
기타B5N과 동일한 외부 무장 탑재



해군은 B6N의 엔진으로 검증된 미쓰비시 ''카세이'' 엔진을 장착할 것을 요청했지만, 나카지마의 엔지니어 마츠무라 켄이치는 연료 소비가 적고 적응성이 더 뛰어나다는 이유로 나카지마의 새로운 ''마모루'' 11 14기통 공랭식 방사형 엔진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2]

1939년 10월, 해군이 제시한 "'''14 시 함상 공격기''' 계획 요구서"의 개발 요구사항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항목내용
최고 속도 이상
항속 거리(뇌장 시)3334km 이상
발동기(엔진)호 또는 화성


2. 2. 엔진 선정 논란

일본 해군은 미쓰비시 '카세이' 엔진을 제안했지만, 나카지마는 자사의 '마모루' 엔진을 주장했다.[2] 개발 요구서에는 97식 1호 함상 공격기 등에 사용된 단열 9기통 '광(光)'을 복열 14기통화한 1,800마력급 나카지마 엔진인 '호(護)'가 지정되어 있었다. 96식 육상 공격기 등에 사용된 '금성(金星)'을 개량한 1,500마력급 미쓰비시 엔진 '화성(火星)'도 후보였다. 해군은 '화성'을 선호했지만, 나카지마는 자사 엔진이 개량이 쉽고, 더 높은 출력을 낼 수 있으며, 연료 소비량이 적다는 점을 내세웠다.[2] 결국 해군이 나카지마의 주장을 받아들여 1941년 3월에 '마모루' 엔진을 채택했다.[2] 하지만 '마모루' 엔진은 기계적 결함과 출력 부족 문제를 겪었다.[2] 1942년 2월 20일에 완성된 B6N1 시제 1호기는 엔진 진동이 심하고 고장이 잦았으며, 강한 토크로 인해 이착륙 활주 중 기수가 왼쪽으로 꺾이는 문제가 있었다.

3. 설계 및 특징



텐잔은 당시 일본 항공모함의 엘리베이터 크기에 맞춰 설계되었다. 1939년 12월, 일본 해군은 중일 전쟁에서 약점을 드러낸 B5N을 대체할, 더 빠르고 항속거리가 긴 함상 공격기를 나카지마에 요구했다. 요구사항은 승무원 3명, 최고 속도 250kn, 순항 속도 200kn, 800kg 폭탄 탑재 시 1000nmi 항속 거리, 또는 외부 무장 없이 2072nmi 항속 거리를 충족하는 것이었다.[1]

해군은 B6N의 동력 장치로 검증된 미쓰비시 ''카세이'' 엔진을 원했지만, 엔지니어 마츠무라 켄이치는 연료 소비가 적고 적응성이 더 뛰어나다는 이유로 나카지마의 새로운 ''마모루'' 11 14기통 공랭식 방사형 엔진을 주장했다. 그러나 마모루 엔진은 기계적 결함으로 예상 출력을 내지 못했다.[2]

설계자 마츠무라는 당시 일본 항공모함의 표준 크기 엘리베이터 제한으로 B5N과 유사한 날개 길이와 면적을 사용하고, 전체 길이를 11m로 제한해야 했다. 이 제한 때문에 B6N은 독특한 뒤로 젖혀진 꼬리 날개와 방향타를 가지게 되었다. 날개는 유압으로 위로 접혀 전체 폭을 14.9m에서 약 6.3m으로 줄였다. 무거운 동력 장치로 증가한 날개 하중을 줄이기 위해 플랩을 설치하여 날개 뒷전을 연장했다. 이 플랩은 이륙 시 20도, 착륙 시 38도로 낮춰졌지만, 이전 모델보다 실속 속도가 더 높았다.[3]

B6N1 시제기는 1941년 3월 14일에 첫 비행을 했지만, 테스트 결과 비행 중 불안정한 롤링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4엽 프로펠러가 발생시키는 극심한 토크 때문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꼬리 날개를 얇게 만들고 왼쪽으로 2도 10분 이동시켜 조종 특성을 개선했다.[4]

B6N1의 ''마모루'' 11 엔진은 특정 속도에서 심한 진동과 과열이 발생하기 쉬웠고, 신뢰성이 낮았다. 그러나 개조 후 엔진 성능이 향상되어 1942년 말 항공모함 수락 시험이 시작되었다. 류호와 즈이카쿠에서 실시된 시험 비행 결과, 꼬리 갈고리 장착부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소형 항공모함에서의 사용을 위해 로켓 보조 이륙 장치를 사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5]

B6N1은 1943년 초에 공식 생산 승인을 받고, 해군 함상 공격기 ''텐잔'' 11형으로 지정되었다. 초기 시제품 테스트를 기반으로 조종석 뒤쪽 복부 터널에 유연한 92식 기관총 추가, 7.7mm 97식 기관총을 좌측 날개에 장착, 어뢰 장착 랙을 2도 아래로 기울이고, 주착륙 장치를 강화하는 등의 개조가 이루어졌다.[6] B6N1의 연료 탱크를 자가 밀폐식으로 교체하려는 제안은 연료 용량 감소로 항속 거리가 줄어들어 일본 해군에 의해 거부되었다.[7]

1943년 7월, 일본 군수성은 나카지마에게 ''마모루 11'' 엔진 생산 중단을 명령했다. 나카지마는 해군이 원래 요청했던 미쓰비시 MK4T ''카세이 25'' 엔진을 B6N1 동체에 대체했다. ''마모루 11''과 ''카세이 25''의 크기가 비슷해 설치는 비교적 간단했으며, 노즈 연장, 엔진 카울링의 오일 쿨러와 공기 흡입구 변경만 필요했다. 또한, 3.4m 직경의 4엽 프로펠러와 짧은 스피너를 설치하여 무게를 절약하고, 접이식 꼬리 바퀴는 영구적으로 내려진 위치에 고정했다. 엔진 카울링 양쪽의 단일 배기 파이프는 야간 눈부심을 줄이고 약간의 전진 추력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개의 작은 스터브로 교체했다. 개조된 항공기는 해군 함상 공격기 ''텐잔'' 12형, 즉 B6N2로 지정되었다.[8]

1943년 가을부터 생산된 B6N2의 3대 중 1대는 적 함선을 탐지하기 위해 3-시키 3형 대공 레이다를 장착했다. 야기 안테나는 날개 앞쪽 가장자리를 따라 설치되었으며 후방 동체 측면에서도 돌출되었다.[9]

B6N3 13형은 육상 기지 사용을 위해 계획되었는데, 당시 일본의 대형 항공모함은 대부분 침몰했고, 소형 항공모함은 B6N과 같은 무거운 함재기를 발사할 사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변경 사항으로는 ''카세이'' 25c형 엔진 설치, 유선형 엔진 카울링 및 승무원 캐노피, 주착륙 장치 강화, 접이식 꼬리 바퀴 및 꼬리 갈고리 제거 등이 있었다. 2대의 B6N3 시제기가 완성되었지만 일본의 항복으로 생산에 들어가지 못했다.[9]

1945년 8월까지 나카지마는 군마 현 오카와와 아이치 현 한다 공장에서 총 1,268대의 B6N(대부분 B6N2)을 완성했다. 생산량은 월 90대를 초과한 적이 없었다.[9]

해군은 실용 시험 종료를 기다리지 않고, 기지 항공대용으로 B6N1을 130기 정도 생산하도록 나카지마에 지시했다. 1943년 1월에는 엔진을 수성 메탄올 분사 장치를 추가하여 1,800마력급이 된 [화성 25형]으로 교체한 가칭 B6N2의 개발도 시작되었다.[8]

B6N1 양산과 부대 배치가 진행되는 한편, 같은 해 7월에 B6N2 시제 1호기가 완성되었고, 엔진 신뢰성 향상, 항속 거리를 제외한 전반적인 성능 향상이 확인되어 같은 해 10월 B6N1 대신 B6N2 양산이 시작되었다.

3. 1. 동체

B5N 함재 뇌격기는 중일 전쟁 초기에 약점을 드러냈고, 일본 제국 해군은 더 빠르고 항속거리가 긴 대체기를 찾기 시작했다. B6N은 어뢰폭탄을 동체 하부에 매다는 방식을 채택했다.[1] 조종석 좌석은 높이 조절이 가능하여 최대 2배까지 높일 수 있었다. 전면 윈드실드 상면 일부를 세워 바람막이로도 사용했다.[6]

엔진 토크에 의한 좌선회 현상을 막기 위해 수직 꼬리 날개를 왼쪽으로 기울여 장착했다. B6N1은 2.1도, B6N2는 기수를 연장하고 미륜을 고정했다.[4] 또한, 항공모함의 엘리베이터 크기 제한으로 인해 수직 꼬리 날개를 뒤로 젖혀 전체 길이를 줄였다.[3]

3. 2. 주익

97식 함상 공격기보다 약간 작은 크기(37.202 m², 14.894 m)에 날개 끝에서 접을 수 있는 구조였다. 나카지마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층류 익형 (K 시리즈 초기형)을 채용했다.[3] 플랩의 일종인 나비형 플랩을 장착하여 이착륙 성능을 향상시켰으나, 이전 모델보다 실속 속도가 더 높았다.[3] 주익 윗면이 연료 탱크의 일부를 구성하는 대용량 세미 인테그랄 탱크를 채용하여 항속 거리를 늘렸다.[7]

3. 3. 엔진

미쓰비시 카세이 25형일본어 14기통 성형 엔진 (1,380kW, 1,850마력)을 장착했다.[1] 원래 일본 해군은 B6N의 동력 장치로 검증된 미쓰비시 카세이일본어 엔진을 장착하길 원했지만, 엔지니어 마츠무라 켄이치는 연료 소비가 적고 적응성이 더 뛰어나다는 이유로 1870hp 마모루 11 14기통 공랭식 방사형 엔진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마모루 엔진은 기계적 결함에 시달렸고 예상한 출력 정격을 달성하지 못했다.[2]

B6N1은 마모루 11일본어 엔진을 장착했는데, 이 엔진은 특정 속도에서 심한 진동과 과열이 발생하기 쉬웠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5] 1943년 7월, 일본 군수성은 나카지마에게 해군이 사용 중인 다양한 엔진의 수를 줄이기 위해 마모루 11 엔진의 생산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나카지마는 1850hp 미쓰비시 MK4T 카세이 25일본어 엔진을 B6N1 동체에 대체하도록 요청받았다. 마모루 11과 카세이 25의 크기가 비슷했기 때문에 설치는 비교적 간단했으며, 항공기의 무게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즈를 연장하고 엔진 카울링의 오일 쿨러와 공기 흡입구에 약간의 변경만 필요했다.[8] 또한, B6N2는 더 작은 3.4m 직경의 4엽 프로펠러와 짧은 스피너를 설치하여 약간의 무게를 절약했다.[8]

1943년 1월에는 엔진을 수성 메탄올 분사 장치를 추가하여 1,800마력급이 된 [화성 25형]으로 교체한 가칭 B6N2의 개발이 시작되었다.[8]

3. 4. 무장 및 방탄

주무장인 항공 어뢰는 91식 항공 어뢰 개량형 3형을 사용할 예정이었으나, B6N1 시제기에서의 실험 결과 강도 부족이 드러나 이를 보강한 91식 항공 어뢰 개량형 3형(개) 또는 91식 항공 어뢰 개량형 3형(강)을 탑재했다.[20] 97식 함상 공격기처럼 현수 위치를 기축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치게 하여 윤활유 냉각기용 공기 흡입구와의 간섭을 피했다. 고속 어뢰 공격 시 어뢰가 해면에서 튀어 오르는 현상을 막기 위해, 기축에 대해 어뢰를 2도 아래로 매달았고, 공중 뢰도와 해면 돌입 각도의 안정을 위해 어뢰 꼬리에 부착되는 덧판을 기존의 97식에서 고속 어뢰 공격에 적합한 4식으로 변경했다.

후방 및 하방 방어를 위해 수납식 후하방 총좌를 장비했다. 후하방 총좌는 1940년경 800kg 폭탄을 사용한 고고도 수평 폭격 시 사용을 상정하여 장비되었지만, 실제로는 적 전투기의 요격을 받기 쉬운 수평 폭격은 거의 하지 않았고, 저공 어뢰 공격이 주 전술이 되었으며, 총좌를 사격 가능 상태로 만드는 데 시간이 걸려 사용 빈도는 낮았다.

B6N1 초기형(70호기까지)은 어뢰 공격 시 적함의 대공 기관총을 제압하기 위해 좌 주익 내에 7.7mm 고정 기관총을 탑재했지만, 71호기 이후 폐지되었다.[20]

1944년 4월부터 개발이 진행된 대잠수함용 유익 선회 어뢰 "공뢰 6호"의 모기로서 B6N1 및 B6N2가 예정되었다.[20]

연료 탱크에는 탄산 가스 분사식 소화 장치를 장착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불충분하여 1944년 10월에 자동 방루식 탱크 장비기를 시제했지만, 불량품이 많아 양산되지 못했다.

3. 5. 기타

1944년 3월경부터 B6N2 및 B6N2a는 3대 중 1대의 비율로 H-6형 탐지기를 탑재했으며, 마리아나 해전 당시 제601항공대에도 탐지기 탑재형이 수 대 배치되었다. 야간 뇌격에 투입되는 기체 중에는 전파 고도계를 추가 장비한 것도 있었다(주익 하부에 안테나 추가).[21]

97식 함상 공격기보다 항속 거리가 크게 향상되어 조종사 피로 경감을 위해 자동 조종 장치를 표준 장비했다. 96식 육상 공격기 등 중·대형기에서 이미 실적이 있는 장치였지만, 본 기체에서는 자동 조종 중 비행 자세가 갑자기 바뀌는 경우가 있어 자주 사용되지 않았다. 이륙 활주 거리 단축용 RATO 장비가 예정되었으나, B6N2에서의 탑재 시험과 RATO 배치가 마리아나 해전 이후가 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항공모함에서 사용된 적은 없었다.

4. 운용 역사

1943년 8월, B6N 텐잔은 소량으로 전선 부대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원래 캐롤라인 제도의 트루크 환초에서 97식 함상 공격기(B5N)를 대체할 계획이었으나, 솔로몬 제도에서 연합군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부겐빌 상륙 가능성이 높아져 조기에 실전에 투입되었다. 일본 해군은 로 작전을 개시하여 즈이카쿠, 쇼카쿠, 즈이호의 항공기 173대(B6N 40대 포함)를 라바울의 육상 항공대에 증원했다.[10]

1943년 11월 5일, A6M 제로 전투기 4대의 호위를 받으며 B6N1 14대가 부겐빌 해안의 미국 선박을 공격했으나, B6N1 4대가 손실되었다. 일본군 조종사들은 대형 항공모함 1척, 중형 항공모함 1척, 중순양함 2척 등을 격침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피해는 없었다.[10] 11월 8일과 11일에 추가 공격이 있었지만 큰 손실을 보았고, 11월 13일 트루크로 돌아온 것은 52대뿐이었으며, B6N1 텐잔은 투입된 40대 중 6대뿐이었다.[11]

1943년 12월 4일 콰잘레인 해역에서 USS ''요크타운''을 공격하다 격추된 B6N. 이 공격은 제531 해군 항공대 소속 텐잔 폭격기 6대가 참여했다.


1943년 7월, 제531항공대에 B6N1이 처음 배치되었다. 같은 해 8월 B6N1은 텐잔 11형으로 정식 채용되었고, 11월 중순에는 11형 12기가 라바울의 카비엔으로 진출하여 제582항공대에 편입되었다. 다음 달 부겐빌 섬 해상 항공전에 처음으로 실전 투입되어 6기가 97식 함상 공격기 5기와 함께 미 기동 함대에 야간 뇌격을 실시, 항공모함 3척, 전함 및 중순양함 각 1척 격침을 보고했다. 나카지마 비행기는 해군으로부터 표창을 받았지만, 미 해군 기록에 따르면 침몰한 함선은 없으며, 현재는 야간 오인으로 추정된다.[10][11] 1944년 2월 트럭 섬 공습 이후 수색이나 6~7월 마리아나 제도 공방전에도 투입되었지만, 큰 전과는 없었다.

1944년 6월 19일, B6N은 필리핀 해 해전에서 항공모함 탑재기로서 첫 실전을 치렀다. 당시 미 해군은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B6N은 F6F 헬캣에게 큰 피해를 입었다.

1944년 10월 대만 항공전 중 미 해군 38.3 기동부대(TG 38.3)를 공격하는 B6N 뇌격기


제3함대(후에 제1기동함대에 편입)의 각 항공모함 항공대에는 1943년 12월경부터 B6N2의 배치가 시작되었다. 1944년 3월 B6N2는 12형으로 정식 채용되었지만, 생산이 부족하여 제1기동함대의 텐잔 부대는 정수(99기)의 70%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로 6월 마리아나 해전을 맞이했다. 이 해전에서 제601항공대의 29기가 주간 뇌격을 실시했지만, F6F 헬캣의 요격과 대공 포화에 의해 80%가 넘는 24기가 귀환하지 못했다.

대만 해전에서 미국 항공모함에 어뢰를 투하한 후 초저공으로 퇴각하는 텐잔. 항공모함 에식스(CV-9) 함상에서 촬영


같은 해 10월 대만 항공전에서는 T공격 부대에 편입된 제601항공대 공격 제262비행대의 23기가 미 해군 기동 부대에 야간 뇌격을 실시했고, 제2항공함대에서는 제653항공대 소속기 등으로 편성된 총 56기가 주간 뇌격을 실시했지만, 제701항공대 공격 제252비행대가 순양함 2척의 화재를 보고한 반면, 같은 부대는 부대장기 1기를 남기고 모두 귀환하지 못하는 등 큰 손실을 보았다. 이어진 레이테 만 해전에서도 즈이카쿠를 포함한 항공모함 4척에 총 25기(정수의 약 50%)가 탑재되었지만, 수색이나 대잠 초계, 폭탄을 장착한 제로센으로 편성된 공격대의 유도가 주요 임무였다.

1944년 중반, 일본 해군은 대형 항공모함을 대부분 잃었고 숙련된 조종사도 부족했기 때문에, B6N2는 대부분 육상 기지에서 운용되었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B6N2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가미카제 임무에도 투입되었다.[12]

제601항공대의 텐잔 12형. 오른쪽 주익과 동체 측면에 전탐용 안테나가 확인된다


뇌장한 텐잔 12형

5. 파생형

7.92mm 선회 기총 1정 (후하방)승원3명

6. 운용 부대

7. 현존 기체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의 폴 E. 가버 보존, 복원 및 보관 시설(메릴랜드주 수트랜드)에 B6N2 기체(일련 번호 5350)가 분해된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15][16][17] 1981년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에 인수되기 전까지는 펜실베이니아주 호샴 타운십에 위치한 해군 항공기지 합동 예비 기지 윌로우 그로브에 온전한 상태로 전시되어 있었다.[15][16][17]

기종기체 사진소재지소유자공개 상황상태기체 번호비고
12형[http://www.j-aircraft.com/walk/john_ferguson/jill1stbrd.jpg 전시 당시]미국 메릴랜드주국립 항공우주 박물관
폴 E. 가버 시설[https://airandspace.si.edu/]
비공개보관 중I2-382(전시 당시)한때 야외에 전시되었으나, 노후화로 인해 폴 E. 가버 시설에서 수리를 기다리고 있다. [https://airandspace.si.edu/collection-objects/nakajima-b6n2-tenzan-heavenly-mountain-jill/nasm_A19810429000]


8. 제원 (B6N2)

天山일본어 12형(B6N2)의 제원은 다음과 같다.[18]

나카지마 B6N2 제원
항목
승무원3명
전장10.865m
전폭14.894m
전고3.8m
익면적37.2m2
자체 중량3010kg
최대 이륙 중량5650kg
엔진미쓰비시 MK4T 카세이 25 14기통 공랭식 성형 엔진 (1850hp) 1기
최대 속도482km/h (고도 4900m에서)
순항 속도333km/h
항속 거리1746km (최대 3045km)
상승 한도9040m
무장


참조

[1] 서적 Wieliczko 2003
[2] 서적 Francillon 1979
[3] 서적 Wieliczko 2003
[4] 서적 Francillon 1979
[5] 서적 Francillon 1979
[6] 서적 Wieliczko 2003
[7] 서적 Wieliczko 2003
[8] 서적 Wieliczko 2003
[9] 서적 Wieliczko (2003)
[10] 서적 Wieliczko 2003
[11] 서적 Wieliczko 2003
[12] 서적 Axis Suicide Squads: German and Japanese Secret Projects of the Second World War Fonthill Media 2017
[13] 서적 The Maru Mechanic 1981
[14] 서적 Military Classics Vol. 48
[15] 웹사이트 Japanese Aircraft: Nakajima http://preservedaxis[...]
[16] 웹사이트 Nakajima B6N2 Tenzan (Heavenly Mountain) JILL https://airandspace.[...] Smithsonian
[17] 웹사이트 Wings, Pair, Nakajima B6N2 Tenzan (Heavenly Mountain) JILL https://airandspace.[...] Smithsonian
[18] 서적 Francillon 1970
[19] 웹사이트 The Incomplete Guide to Airfoil Usage https://m-selig.ae.i[...] 2019-04-16
[20] 간행물 Scale Aviation 2009年9月号
[21] 서적 異なる爆音―日本軍用機のさまざまな空 光人社 2012
[22] 문서 この他に、単発戦闘機を[[紫電改]]に集中(後に[[雷電 (航空機)|雷電]]を追加)することに決定。
[23] 서적 証言記録市民たちの戦争 2本土にせまる戦禍 大月書店 2015
[24] 서적 本土にせまる戦禍
[25] 서적 本土にせまる戦禍
[26] 서적 本土にせまる戦禍
[27] 서적 本土にせまる戦禍
[28] 서적 本土にせまる戦禍
[29] 서적 本土にせまる戦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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